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원제 : 진보주의자의 양심)

경제 양극화, 극복 해법은 뭔가(머니투데이, 백경숙 리브로MD | 07/02 12:27)

[머니위크]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미국은 부유한 나라 중 유일하게 기본적인 의료보험서비스 제공을 시민들에게 보장하지 않는 국가다. 의료서비스 제공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결국 인생은 불공평한 법이고 세상의 불공평을 해결하는 것이 정부의 임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지성 49위에 빛나는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며 경제위기에 빠진 미국이 풀어가야 할 미래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를 통해 의견을 밝혔다. 극심한 빈부차의 해결방안으로 미국 내 '국민의료보험 제도의 완성'을 지목한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국민의료보험이 미국의 경제 양극화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는 없다. 다만 국민의료보험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진보주의자들이 미국의 불평등을 고치는 더 광범위하고 어려운 임무에 눈을 돌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로 '정치'를 주목하고 있다. 부의 재분배를 거부하는 보수주의자들이 사회보장제도의 기반을 흔들자 2004년 이후 미국 경제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됐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수백만의 중산층 가정들은 사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에게 기회를 마련해 주려고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고 있다. 결국 보수주의운동이 소수의 부유한 엘리트집단에게 이익이 되는 근본적으로 반민주주의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는 현 시점에서 1920~1950년대 부유층과 노동자 계급의 차이가 급격히 줄어들었던 이른바 뉴딜정책기의 '대압착' 시대를 주목했다. 부자에 대한 세금을 강화하고 노동조합이 부활한 결과 하층계급으로의 소득과 부의 재분배는 물론이고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호황을 가져왔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사회 안전망 확충, 국민의료보험제도 도입 등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강조했던 존 메이너스 케인스의 방법론만이 경제 양극화의 늪에 빠진 미국을 구해줄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민영의료보험 확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요즘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는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이 책은 미국을 선진국으로 만들어 준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그리고 20세기 중반에 일어났던 미국경제체제 개혁을 통해 선진사회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의도적인 노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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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양극화가 소득 불균형 키워
(매일경제, 성철환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2008.07.16 09:54:26)
[서평] 미래를 말하다

 

 

 진보와 보수의 싸움은 어느 시대나 있게 마련이다. 평등을 지향하는 진보는 경제성장을 희생시키는 비용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자유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보수는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국가가 어떤 정책 노선을 추구하는 것이 국민의 삶의 질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일까.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쓴 ‘미래를 말하다’는 미국 경제 사례를 통해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한다. 그는 노벨경제학상보다 받기 어렵다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1991년에 수상한 미국의 대표적 경제학자로 뉴욕타임스에 2주에 1번씩 게재하는 칼럼으로도 유명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중산층 중심의 사회였다.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소득이 늘어난 미국인들은 도시 빈민가와 농촌의 가난에서 벗어나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전에 없이 안락한 삶을 누렸다. 경제적 공동체 의식이 두드러진 시대였다. 두꺼운 중산층이 뒷받침하는 상대적으로 평등하고 평온한 상태가 지속된 때이기도 하다.

 이런 전후시대의 평등은 점진적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1930년대와 4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같은 진보주의자들이 미국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소득 불평등을 현저히 개선시킨 덕분이다. 경제 사학자인 클라우디아 골딘과 로버트 마고는 이를 ‘대압축(Great Compression)’이라 불렀다. 요즘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양극화와 대조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보장제도와 실업보험을 근간으로 한 뉴딜정책이 그 근저에 있었다. 대압축 시대는 소득분배 결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대비되는 사회적 제도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생생한 예다.

 소득격차가 줄었던 경제적인 황금시대는 진보와 보수가 극단으로 쏠리지 않았던 정치적인 황금시대와 거의 일치한다. 황금시대는 70년대 원유 가격 상승과 통제 불가능한 물가 상승, 생산성 하락이 불러온 경제위기와 함께 끝났다. 80년대 이후 소득격차는 더 확대됐다. 정치적 양극화도 두드러졌다. 공화당의 우파성향이 민주당과의 격차를 넓히고 정치적 양극화와 소득격차를 확대시켰다는 정치학자들 분석도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양극화와 함께 왔다는 뜻이다. 경제적 이득을 모든 국민이 공유하는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현재 미국 경제는 전후 경기호황의 종지부를 찍었던 1973년보다 분명히 발전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미국 경제성장의 혜택이 보통 사람들에게까지 돌아갔는지는 의문이다. 생산성 향상이 노동인구에게 똑같이 분배됐다면 현재 일반 노동자의 소득은 70년대 초에 비해 35% 정도 향상돼 지금보다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극심한 소득 불균형은 심각한 사회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중산층의 빚이 늘어난 것은 결코 사치스런 생활 탓이라고 볼 수 없다.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사회에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좀 더 나은 기회를 마련해주려 좋은 학군에 무리해서 집을 사려는 현상이야말로 중산층의 살림을 쪼들리게 만든 근본 요인이다.

 크루그먼이 국민의료보험제도 도입을 역설한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미국은 주요 선진국 중 유일하게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 제공을 국민들에게 보장하지 않는 국가다. 보험회사, 의료법인, 제약회사 등이 막강한 로비력으로 국민의료보험제도 도입을 막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1인당 의료비 지출이 주요 선진국 중 가장 큼에도 기대수명은 가장 짧은 것이 바로 이런 상황 탓이라고 볼 수 있다. 건보공단 민영화설에 우리 국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무리가 아니다.

 크루그먼의 주장에 무조건 동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진보냐 보수냐의 싸움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선책을 찾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은 누구든 반대할 명분이 없다. 특히 정치적인 양극화가 경제적 불평등을 키우고 국민의 삶의 질을 떨어트렸다는 크루그먼의 지적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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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망하지 않으려면 이 두 가지가 필요해"(프레시안, 윤효원/ICEM 코디네이터, 2008-07-27 오후 3:51:00)
[노동과 세계]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말하는 '미래'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쓴 <미래를 말하다>를 읽었다. 원래 제목은 <진보주의자의 양심(The Conscience of a Liberal)>인데, 현대경제연구원의 연구원인 번역자가 <미래를 말하다>로 의역했다. 영문판 <진보주의자의 양심>이란 제목은 애리조나 출신의 5선 상원의원이자 급진 보수주의의 대표적 지도자였던 배리 골드워터가 1960년 낸 <보수주의자의 양심>을 빗댄 것이다. 보수주의 활동가 레오 브렌트 보젤이 대필했던 <보수주의자의 양심>은 교육, 노조, 시민권, 농업 보조금, 사회복지, 소득세에 걸쳐 보수주의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주요 문건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제목을 둘러싼 곡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래를 말한다>는 노조, 시민권, 사회복지, 소득세에 대한 미국 진보주의 진영의 입장을 담고 있다. 크루그먼 자신은 경제학자지만 이 책은 역사책에 가깝다. 20세기 미국의 정치사, 경제사, 사회복지사, 건강보험사, 노조운동사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미국 황금 시대의 동력: 공화당의 좌경화

 이 책에서 크루그먼은 1930년대 말 뉴딜 정책에서 태동해 1950년~6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미국의 황금시대를 가능케 한 원인을 파고든다.
 "경제적으로 균등했던 미국은 정치적으로도 중도 노선을 지켰다. (…) 공화당은 뉴딜정책의 성과를 되돌리려 더 이상 애쓰지 않았으며, 꽤 많은 공화당 의원이 메디케어(연방정부가 운영하는 65세 이상 고령자용 건강보험)를 지지하기도 했다. 초당적 제휴가 정말로 의미 있던 시절이었다."

 크루그먼이 주목하는 '초당적 제휴'의 역사적 실체는 민주당의 우경화가 아니라 공화당의 좌경화였다.
"(90년대 들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경제적인 이슈에서부터 복지와 세금에 이르기까지 분명 지미 카터뿐 아니라 리처드 닉슨보다 더 보수적인 정책을 펼쳤다. 반면에 공화당은 확실히 더 우파적인 성향을 보였다. (…그 결과), 미국의 소득분배 격차가 심해지면서 극소수 엘리트 집단이 나머지 집단과 분리되었다."

 그는 정치학자 놀러 매카티, 키스 풀, 하워드 로젠탈의 연구 결과(Polarized America: The Dance of Ideology and Unequal Rights, MIT Press, 2006)를 인용한다.
 "공화당이 진보적이 되어 민주당과의 의견 차를 좁히면 소득 격차가 줄고, 1950~60년대에 보았던 것과 같은 초당적 제휴가 이뤄진다. 그러나 공화당의 우파 성향이 강해지면 오늘날과 같이 양당의 양극화가 깊어지고 소득 격차도 확대된다."

뉴딜 정책 : 부자에게 뺏어 노동자에게 나눠주기

 미국의 부자들에게는 악몽기였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황금시대였던 50~60년대에 이뤄졌던 평등화에 주목하면서 크루그먼이 강조하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뜻밖에도 평등화에 대한 연구가 상세히 이루어질수록, 객관적인 시장의 힘에 대한 점진적인 반응이 아니라 정치적인 힘의 균형이 달라지면서 급작스런 변화가 온 것처럼 보인다."

 크루그먼은 1940년대와 50년대에 최고 부자들의 소득이 급감했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경제적 엘리트 집단이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현상은 천천히 진행된 것이 아니라 아주 갑자기 일어났다. 부자들의 소득이 급감한 이유는 바로 '세금' 때문이었다."

 기업 이익에 대한 연방정부의 세금이 1929년에는 14%도 안 됐지만, 1955년에는 45%까지 올랐다. 상속세의 상한율은 20%에서 45%로, 그리고 60%, 70%, 결국 77%까지 올랐다.
"1920년대에는 부자들에게 세금이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미미한 세율로) 부자들은 자신들의 왕국을 유지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 하지만 뉴딜 정책은 실제로 그들의 소득을 상당부분, 어쩌면 거의 전부를 세금으로 거두어갔다. 상류층이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배신자라고 생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치권은 기업과 부자에 대한 세금을 올리는 법률적 조치를 취했고, 그 결과 미국 역사상 가장 평등한 번영 시대가 열렸다. 우리에게 익숙한 논리로 설명하면, '선성장 후분배'라는 경제 논리를 배격하고 정치적 결단에 의해 '선분배' 정책을 추진하니 '후성장'이 경제적으로 가능했다는 것이다.

육체 노동자와 노조의 전성기

 크루그먼은 1950~60년대의 황금시대를 1920~30년대의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에 빗대어 '대압착(the Great Compression)'이라고 부른다. 19세기 후반과 20세 초반에 이뤄진 엄청난 빈부격차가 이 시기에 "압착"되어 미국 역사상 가장 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이 시대의 최대 희생자는 부자였고, 최대 수혜자는 육체 노동자였다.

 "대압착 이후 194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중반에 이르는 30년은 육체 노동자의 황금기였다. (…) 그들의 지위도 물론 상대적으로 높았다. 아주 좋은 직장을 가진 육체 노동자들은 대졸학력 전문직 종사자와 거의 같거나 더 높은 보수를 받았다."

 진보적인 정부 정책이 노동조합운동의 부활에 큰 힘이 되었다. 1935년 루즈벨트 정부와 민주당이 지배하던 연방의회는 일명 '와그너 법(Wagner Act)'으로 불리는 전국노동관계법을 통과시킨다. 루즈벨트 정부의 개혁입법에 사사건건 위헌판결을 내리며 노사 갈등과 분배 문제에서 기업과 부자의 입장을 대변해오던 연방대법원도 1930년대 후반 들어 대법관 구성이 변하면서 와그너법을 비롯한 개혁입법을 합헌으로 판결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민간부문 노동자들에게 노조결성, 단체교섭, 파업 같은 노동권이 보장되었다. 또한 전국노동관계위원회가 설립되어 고용주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노조가 노조원들의 평균임금을 인상하면서 간접적으로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 임금도 소폭이지만 인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노조가 없는 회사의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을 막으려고 임금인상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산별) 노조는 최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들보다는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더 많이 올리기 위한 협상에 중점을 둠으로써 육체 노동자 간의 소득격차도 줄이는 역할을 했다."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외부 요인이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국가전시노동위원회가 부활했고, 정부가 노사 간의 분쟁 중재뿐만 아니라 민간기업의 임금인상률까지 감독하게 되었다. 위원회는 직종별 급여수준을 정해놓았고, 기업 간 임금 격차를 줄이는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위원회의 임금 기준이 산업간, 그리고 산업 내부의 임금을 "압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와그너법의 진보적인 내용은 1947년 만들어진 노사관계법, 일명, 태프트-하틀리 법(Taft-Hartley Act) 때문에 타격을 입게 되고, 이후 노조운동 역시 약해진다.

 "(어쨌거나) 중산층 중심의 미국사회는 천천히 발달한 것이 아니라 뉴딜 정책의 입법화, 노조 활성화,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임금 통제를 통해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세워진 것이다."

미국의 노조운동이 놓친 것들

 1950년대의 미국은 노동조합운동이 왕성한 나라였다. 비농업 노동자의 30%가 노조원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미국 노조운동은 쇠퇴의 징후를 갖고 있었다. 크루그먼은 국민건강보험의 부재와 노조 조직률의 지역 간 편차로 설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 국가들은 사회복지국가로 변모했고, 특히 의료제도의 국영화나 공영화는 시대의 대세였다. 영국의 무상의료제도인 국민건강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가 가장 대표적이다.

 하지만, 미국 노조운동은 사회복지가 아닌 기업복지에 집중했다. 거대 산별노조들은 민간기업에 의료보험을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그 대표적인 계기가 1949년 전미자동차노조와 GM이 체결한 이른바 "디트로이트 협약"이었고, 이것이 50~60년대 거대노조와 거대기업 간의 협약을 기반으로 하는 미국 단체협상의 모델이 되었다.

 "(그 결과) 1960년대 미국인 대부분은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었고, 다수는 장애보험, 실업수당과 퇴직수당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이 모든 보장은 정부가 아니라 고용주인 민간 기업이 제공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복지제도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만큼이나 컸지만, 상대적으로 정부보다 민간기업의 지출에 의존하는 부문이 훨씬 높았다."

기업복지의 한계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추진하던 서유럽에서는 국가가 사회복지로 제공하던 교육비, 병원비, 연금 따위가 미국에서는 기업복지로 제공되었다. 기업복지는 종업원을 위한 비용으로 인정되어 노사 모두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었다.

 문제는 정치와 경제의 황금기가 지난 다음에 일어났다. 기업의 상황이 나빠지면서 규모가 작은 기업들부터 종업원과 그 가족 (심지어는 퇴직자와 그 가족을 위한) 기업복지제도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경제 상황의 악화와 노조운동의 약화가 맞물리면서 기업복지에 기반을 둔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는 위기상황으로 치달았다. 기업과의 고용관계 단절은 노동자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위기는 1970년대 미국 보수주의 정치운동의 부활과 맞물렸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공화당이 다시금 부유층에 대한 과세에 반대하고, 중산층과 빈곤층을 위한 복지에 반대하는 정당으로 거듭나면서 이를 실현시키려고 무슨 짓이든 할 태세를 갖추었다."

 급진적 보수주의, 즉 시장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가 득세하면서, 사회보장제도를 민영화하고 최저임금제를 폐지하며 노동부와 교육부 같은 연방정부기관도 없애야 한다는 극단주의가 공화당을 비롯한 정치권에 영향을 미쳤다. 이 무렵 미국기업연구소(AEI), 헤리티지재단, 맨해튼연구소, 케이토연구소, 허드슨연구소 같은 보수주의 운동의 싱크탱크들이 활약하며 극단주의를 선도했다.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

오늘날의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국민적인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소득세 최고한계세율도 1970년대 초 70%에서 지금은 35%로 줄어들었다. 1930년대 CEO와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봉은 40배 차이가 났는데, 2000년대 초에는 367배가 넘었다. 저임금을 받는 서비스 부문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30년 전에 비해 하락했다. 경제적 이득을 전 국민이 공유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미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부가 넘쳐나지만, 그 혜택은 극소수가 누릴 뿐 대다수의 삶은 힘들다.

 "미국인의 평균소득도 상당히 높아졌다. 그러나 평균소득이 실제로 사람들이 얼마나 버는 지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만약 빌 게이츠가 어떤 술집에 들어가면 그 술집 고객의 평균재산은 급상승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 술집에 이미 앉아 있던 고객들이 실제로 더 부자가 된 것은 아니다."

비효율과 낭비의 극치인 민간의료보험

 크루그먼이 진보주의 운동의 재구성을 위해 제안하는 의제는 전국민건강보험의 도입이다. 미국인의 4분의 1이 의료보험에서 소외되고 있다. 그러고도 2004년 미국 정부의 1인당 의료비 지출은 6102달러로 무상의료를 제공하는 영국의 2508달러의 두 배를 훨씬 넘었다. 그만큼 비효율적이라는 말이다. 보험적용을 받더라도 안심하진 못한다. 민영보험사의 수지타산에 도움이 안 되는 환자는 솎아지거나 의료비 지불을 거절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현재 의료체계에서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보험을 거부당하거나 터무니없는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 2006년 한 가족당 연평균 의료보험료는 1만1천 달러(1100만 원) 이상이었다."

 민간보험사는 이윤을 창출하는 회사이지 시민들의 의료비를 지원하는 조직이 아니다. 따라서 보험회사의 이익은 의료비는 되도록 지불하지 않고 보험료만 거두어야 커질 수 있다. 실제로 보험사들은 환자에게 들어가는 치료비를 '의료손실'로 표기한다.

 "(65세 이상 노인을 위한 연방정부의 공공건강보험인) 메디케어는 재원의 2%만을 관리비 명목으로 지출한다. 민간보험사의 경우에는 관리비용이 15%에 이른다. (…) 이 비용은 민간보험사의 행정비용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 여기에는 의료비 지급을 담당하는 많은 인력을 고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추가적인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보험사가 환자와 병원에 의료비 지불을 거부할 명목을 찾기 위해 고용한 인력(이들은 환자의 병력을 뒤져 보험사에 미리 밝히지 않은 병력이 있는지 찾는다), 그리고 보험사의 치료비 지불 거부에 맞서기 위해 병원이 고용한 인력, 관련한 법정 분쟁에 들어가는 비용은 미국 정부가 국민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한다면 발생할 리 없는 비용들이다.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시장 법칙'에 의해 날로 올라가는 의료비는 보험료 인상을 부추겼고, 보험료 부담에 허덕이는 기업이 의료보험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

 "그 결과 2001년 직장에서 운영하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미국 노동자는 65%였던데 반해, 2006년에는 그 수치가 59%로 떨어졌다."

진보주의의 최종 목표, 노조운동을 되살리는 것

 크루그먼의 전략은 사회보장제도가 뉴딜을 대표한 것처럼 국민의료보험제도가 성공하게 된다면, 사회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개념을 확산시킬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미국의 불평등을 고치는 더 광범위하고 어려운 임무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 미국인 대부분은 '거의 모든 사람들은 믿을 만하다'라는 명제에 동의했다. 지금은 대부분 이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1960년대 미국인 대부분은 정부가 '모두의 이익을 위해' 국정을 운영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소수의 거대 이익집단을 위해' 국정을 운영한다고 믿는다. 불평등의 확대가 우리 사회에 냉소주의가 만연해진 이유라고 믿을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

 사회 불안을 악화시키는 불평등을 제거하기 위해 크루그먼은 부자를 위한 세금 감면 제도를 폐지할 것, 누진세를 강화할 것, 탈세를 막을 것, 최저 임금 제도를 강화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더불어 그는 노조운동을 되살리는 것이 진보주의자의 최종 목표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캐나다의 경제는 미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임금 불평등의 증가폭이 상당히 작게 나타났는데, 강력한 노동운동이 지속된 것이 주효한 것 같다. 노조는 임금 분포에서 중간을 차지하는 조합원들의 임금을 올린다. 또한 조합원들 간의 임금을 평준화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노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경영진에 대항하여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너무 높거나 너무 낮은 보수를 제한하는 사회규범을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노조는 진보적인 정책이 시행되도록 노조원들의 투표를 유도한다. (…) 노조의 부활을 촉진하는 것이 진보적인 정책의 주요 목표여야 한다."

또 다른 재미, 공화당 온건파의 역사

 레이건이나 조지 부시류의 공화당 급진파에 가려진 공화당 온건파의 역사도 곁가지로 알게 해준다는 게 이 책의 또다른 재미인 듯하다. 워터게이트로 좇겨난 리처드 닉슨이 세금을 올리고 환경규제를 늘렸으며, 국민의료보험을 도입하려고까지 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하기야 외교에서도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해 적성국이었던 중국과의 관계를 튼 것도 닉슨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아니었다면, 닉슨 행정부 시절 미국에 국민건강보험이 도입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52년 공화당이 백악관을 다시 차지하게 만든 주역이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4년 자신의 형 에드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어떤 정당이든 사회보장이나 실업보험제도를 폐지하려 한다거나 노동법과 농업지원 프로그램을 없애려 든다면, 미국 역사에서 다시는 그 정당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시도가 가능하다고 믿는 소규모 분파도 물론 있습니다. 헌트(H. I. Hunt)와 몇몇 텍사스 석유재벌 그리고 정치를 취미로 하는 다른 지역 출신의 기업인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수적으로 열세인데다 어리석답니다."

수적으로 열세인데다 어리석었던 "그들"이 어떻게 미국의 정치사회 풍토를 바꾸고 세계의 흐름을 바꾸었는지가 궁금한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역사문카페에서 북한주민들의 처우문제토론에서 분배관련문제가 나오길래 한 번 올려봤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본적으로 분배가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주의인 것도 한 몫했습니다.(먼산)

by 한맥온 | 2008/10/04 14:33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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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두막루 at 2008/10/04 14:39
헉... 윗부분은 글씨가 잘 안보이는데요.;; 글자색을 수정하셨으면...

물론 분배가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구 공산권의 현실 공산주의는 분배의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맥온님께서도 토론에 참가하시면 좋을텐데요...^^
Commented by 한맥온 at 2008/10/04 14:55
헉;;;; 다시 수정했습니다.;;;; 저같은 것이 어떻게 참가를(ㅎㄷㄷㄷ)
Commented by 두막루 at 2008/10/04 18:37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맥온님 같은 고수분이 참가해주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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